전시장 입구 초반부에 테이트모던에서 보았던 검은 콘셉트의 작품이 걸려있었다. 그 작품 제목이 태양의 죽음(Death of Sun)이었다는 것을 그 때 알게 되었다. 태양이 시커멓게 타버려 온 우주가… 세상의 종말을 보는 듯했다. 이 작품을 영국에서 보고, 한국에서 다시 보니 작품의 제작 과정이 머릿속에서 환하게 연상됐다. 나무로 된 플레이트(합판?)에 둥근 플라스틱 오브제를 붙여놓고 불을 지르는 의식의 과정을 반드시 거쳤을 것이다. 그 의식의 결과로 오롯이 이 작품을 얻었을 것이다. 또 영상으로 남겨진 대지미술인 ‘현상에서 흔적으로’는 개천 뚝의 잔디밭에 삼각형이 연결된 톱날의 형태의 골을 파서 불을 놓았다. 까맣게 탄 7개의 삼각형과 타지 않은 삼각형을 대비시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표현했다. 이 두 작품 모두 어릴 적 경험이 토대가 되어 실천되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김구림은 유학파도 아니었고, 계명대학을 중도 포기할 정도로 생각은 많고 시간이 아까웠던 사람이었다. 즉 행동을 중요시하는 성격이었다. 많은 분야를 건드릴 수 있었던 행보는 나름의 세계미술의 판도를 읽고 있었다. 그 정보통은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미술 관련 잡지를 지속적으로 얻어 탐독한 결과로 보인다.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 시절의 세상은 모두가 힘들어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선각의 눈으로 먼 세상을 바라다볼 수 있었던 능력의 한 사람으로 보인다. 물질로 어떤 관계를 표현하고자 했던 모노하에도 연이 닿아 있었고, 해체가 목적인 포스트 모더니즘의 다다이즘에 특히 지대한 열정이 있었다는 것이 작품에서 증명된다. 평면작업으로 드로잉 같은 작품도 있고, 아상블라즈 작품도 있었다.

작품 모두는 하나 같이 공통점이 있었다. 만약에 섬세한 완성도를 아름다움이라고 한다면 김구림의 작품은 아름다움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결말을 완벽히 짓지 않은 것은 작업의 과정 즉 시간성을 중요시했으리라 믿는다. 그만큼 포장보다는 실천이 더 중요했고, 그것은 순수함으로 직결되며, 그것을 지향했던 작가임이 분명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