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처녀_2020년3월27일_작가노트
[봄처녀]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고
이은상(李殷相)의 시조에 홍난파(洪蘭坡)가 작곡한 가곡이다.
첫 구절에 봄처녀는 이름이 봄처녀인 나비가 봄의 소식을 가지고 언덕을 넘어서 우리에게 온다는 내용이다. 노래의 선율은 단순하지만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림이 연상되는 아름다운 여운을 가진 가곡이다. 봄처녀나비(Coenonympha oedippus)는 동해와 남해를 제외한 지역에서 서식하는 나비이다. 탐구심이 발동되어 가사를 쓴 이은상 선생의 고향을 조사해보니 전주였다. 부산이나 삼척, 여수 등의 해안가였다면 실망을 했을 텐데, 역시 보고 느끼고 했으니 이런 아름다운 가사가 나왔을 거라 추측해 본다.
그동안 많은 나비를 그렸지만 봄처녀나비는 그리지 않았다. 봄처녀나비는 보통의 부전나비의 크기로 조그마하고 안쪽 날개는 동그란 무늬가 있는 감귤색이지만 바깥쪽 날개는 시커먼 구름색에 동그란 무늬마저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봄처녀나비의 친구인 도시처녀나비(Coenonympha hero)와 시골처녀나비(Coenonympha amaryllis)는 그린 적이 있다. 도시처녀나비는 봄처녀나비의 회색 날개에 동그란 무늬가 잘 보이는 나비라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편하다. 시골처녀나비는 안과 밖의 색깔과 무늬가 비슷하다. 사람도 앞과 뒤, 안과 밖이 같아야 순박한 사람이 아니던가? 기가 막히는 작명이다. 우리나라 나비들은 비교적 작고 화려하지 않지만 그리면 그릴 수록 미묘한 매력에 빠져든다.
작은멋쟁이나비(Vanessa cardui)가 있다. 전세계에 분포하고 있는 나비이다. 몇 년 전에 전시회 때문에 프랑스에 보름동안 머무른 적이 있는데, 그때 노르망디해변에서 막 생명을 다한 작은멋쟁이나비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만 서식하는 나비인 줄 알았다. 유럽의 작은멋쟁이나비는 무리를 이루어 지중해로부터 바다를 건너 북부 스칸디나비아 지역까지 날아가거나, 스페인에서 출발하여 지중해와 사하라사막을 거쳐 나이지리아 북쪽 열대우림까지 4,000km를 비행한다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자료가 있다. 4~5세대를 걸쳐 캐나다에서 텍사스로 텍사스에서 멕시코의 고산지대까지 마치 철새처럼 이동을 반복하는 제왕나비(Danaus plexippus)도 있다. 나비학자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은판나비(Mimathyma schrenckii)가 최고의 나비이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4.5cm의 조그마한 날개로 4.000km를 한세대에서 비행할 수 있는 작은멋쟁이나비가 나는 최고의 멋쟁이 나비가 아닐까? 싶다.
2년전 일본 고베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 전시를 관람한 이타미시립미술관장(伊丹市立美術館館長)을 지낸 사카우에요시타로(坂上義太郎)선생의 평론 중에 나비에 관한 문구가 나온다.
「 ‘문수만(文水萬) 시공(時空)을 넘어’
전시실 입구에 중앙에 걸려있는 나비가 새겨진 동그란 청동거울 모양의 작품 <Blue hole> (지름 21cm)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나비는 세계에서 우정과 사랑의 상징입니다’라고 문수만은 제작 의도를 직접 말해주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나는 일본의 시인 안자이 후유에(安西冬衛) (1898~1965)의 단시(短詩) ‘나비 한 마리가 닷탄해협을 건너 갔다’를 떠올렸다. 닷탄해협(韃靼海峡)은 현재의 마미야해협(間宮海峡)이다. 이 시는 나비 한 마리가 사할린에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건너간 것을 읊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일이 있는지 조사해 보았다. 이타미시 곤충관(효고현) 학예사의 설명에 따르면 ‘러시아에 서식하는 큰 흰 나비는, 드물게 기후 상황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오기도 합니다. 또 홍콩이나 대만에 서식하는 왕나비는 오키나와를 경유하여 간사이까지 날아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비가 14킬로미터 이상 날아올라갈 수 있다’는 말에 놀랐다. 」 사카우에선생의 글을 여러 번 읽어보면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불모지의 땅에서 계속해서 개인전를 할 수 있는 용기가 가상하다는 말을 돌려서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5cm의 날개로 해협을 건너 또 다른 육지로 비행한다는 무모한 실천도 용기가 없으면 시도도 못하고 끝날 것이다.
나에게 미술은 단지 투병에서 육신의 자유로움을 얻고 싶어 시작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미술을 지키기 위해 육신을 태워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 게으름이 찾아오면 초심을 잊지 않으려고 나비작업을 시작할 무렵의 작가노트를 꺼내 읽어본다.
「 ‘자유의지’
바람이 불어야만 흔들리는 나의 붓꽃은 허물을 벗어버리고 그토록 바라던 나비가 되었다.
나붓거리며 하늘을 날아올라 이리저리 바람을 타고 자유로움을 만끽하던 화려한 시절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리박스 속에 고정되었다. 박물관의 나비를 보는 순간 내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하였다. 지금껏 나를 꼼짝달싹 못하게 했던 그 모든 원인을 남들에게 돌리는 어리석은 시절을 보냈다. 이젠, 처절한 날개 짓만이 진정한 자유를 다시 얻게 할 것이다. 호흡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붓 길을 나비 따라 가노라면 어느새 한 오라기의 붓끝과 시선만 남고 중간의 육신은 사라진다. 뒤늦게 운명처럼 다가온 미술, 이젠 나의 전부가 되었다. 유행처럼 뒤따르는 쉬운 길은 가지 않으리라.
2007 문수만의 작가노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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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란 제목으로 오랜만에 나비작품을 전시한다.
2020년4월28일(화)~5월24일(일) 체나콜로갤러리 인천시 중구 신포로15번길 69 T. 032-207-7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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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1 : Le Papillon-89_27x61cm_Oil & Acrylic on Canvas_2011(도시처녀나비/극남방노랑나비/큰주홍부전나비/극남부전나비) 자료2 : Le Papillon-92_61x61cm_Oil & Acrylic on Canvas_2011(작은멋쟁이나비) 자료3 : Stuffed freedom-671_diameter 78cm_Oil on Canvas_2020(알렉산더 새날개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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