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이즘
"그것은 전혀 아무것도 아닌가? 아니면 모든 것인가? "
문수만
1919년 12월에 베를린 잡지 「데어 다다」에 실린 이 질문은 털끝만큼이라도 속박되기를 거부하는 다다의 의도와 부정의 정신에 잘 부합되는 함축된 내용이다. 다다는 많은 생명을 앗아간 전쟁이라는 비극적 희생에 대한 예술가들의 반응이다. 전쟁의 불길한 기운이 감돌던 시기에 이탈리아를 위시한 미래주의자들은 기성세대가 고수한 전통적 가치의 모순과 이중성에 반기를 들며 전쟁을 사회정화의 기회라고 선동했다. 하지만 전쟁의 현실은 달랐다. 산업화와 기술의 발달이 안겨준 기계화된 문명은 전쟁광들에겐 무기로 바뀌어 잔혹한 방식으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
반인륜적인 살상행위에 공포와 환멸을 느낀 예술가들은 전쟁을 피해 중립국 스위스로 하나 둘 망명했다. 스위스 취리히에 위치한 카바레 볼테르에서 휴 고발, 트리스탄 차라, 한스 아르프 이외에 몇명이 의기투합해 다다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을 하였고, 그 곳에서 공연과 전시를 열정적으로 하게 되면서 이곳은 다다의 성지가 되었다. 다다이즘은 미술에만 국한된 움직임이 아니었다. 구성원 대다수가 문학가들이었고 카바레 볼테르의 이벤트를 보더라도 미술보다는 문학 중심의 종합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다다(Dada)라는 어원은 아이들의 장난감 목마를 가리키는 프랑스 언어다. 그러나 다다는 사전에서 임의로 찾아낸 선택일 뿐, 어떤 특정한 의미보다는 모든 것들을 내포하고 있는 의미이다. 즉 이것은 다다이즘의 본질에 뿌리를 둔 ‘무의미함'을 암시하며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특이할 만한 것은 다른 사조와 달리, 다다이즘은 외부의 영향으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내부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다이즘은 세계를 부정하기위해 자기 스스로도 부정하는 자기파괴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다의 성공은 곧 다다의 소멸을 가리킨다. 다다 운동의 활동 시기는 후고발이 1916년 취리히의 카바레 볼테르에서 다다의 출생을 알리는 선언했을 때부터 1920년대 초 프랑스 파리에서 이 운동이 종말을 고할 때까지로 볼 수 있다. 불과 몇년이 안되어 그 요란했던 다다는 결국 소멸하고 말았다. 하지만 다다는 그 이후의 미술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다다는 전통적인 문명을 거부하고 기존의 사회적, 도덕적 속박에서 벗어나 개인의 근원적 욕구에 충실 하려는 것이 이 운동의 근본정신이다. 문화적 가치와 이성에 대한 신뢰를 거부하면서 비합리적이고 파괴적인 예술행위를 지향하였다.
다다이스트들의 대표적 활동을 열거하자면, 취리히의 카바레 볼테르에 모인 다다이스트들의 저녁 행사장에서 무대에 올라온 휴고발은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있었고, 이때 배경음악은 소음에 가까웠다. 휴고발은 그 음악에 맞추어 시 <카라반네>를 낭독했다. 그 시는 시의 형식과 규칙을 완전히 무시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소리, 그 자체로만 구성된 시였다. 청중들은 야유와 갈씨를 보냈고, 그 공연은 도중에 중단되고 말았다. 이처럼 난장판에 가까운 공연이 매일 벌어졌다. 취리히 예술가들은 전쟁을 불러온 부르주아적 전통과 가치관에 조롱을 퍼붓기 위해 사회적, 도덕적 규범의 선을 넘나드는 파격적인 예술 행위를 펼쳤다.
베를린 다다를 대표하는 미술가 라울하우스만의 <기계적인 머리>는 나무로 된 더미에 다양한 오브제를 부착한 아상블라주 작품이다. 실험을 위해 제작된 두상 모형은 사람의 머리와 겉모습만 비슷할 뿐 실제로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런 생각도 표정도 감각도 없는 더미의 이마에 길이를 측정하는 눈금자를 부착했다. 관자놀이 부분에는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를 부착시키고, 귀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번호를 맞추어야 열리는 자물쇠를 달았다. 그리고 머리 위에는 계량컵을 올려놓았다. 더미는 생각하지 못하지만 머리 표면에 부착된 도구들은 하나같이 계산과 측량하는 데 쓰이는 것들이었다. 생각하지도 못하는 더미에게 이런 것들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맹신하는 사회적 이성에 대하여 라울하우스만은 노골적으로 비판을 가했다.
뉴욕 다다는 뒤샹을 중심으로 행해졌으며, 취리히 다다 예술가들과는 달리 선언문을 발표하거나 조직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았다. 다다의 태동 이후를 즈음하여 '앙데팡당전‘에는 출품료 6달러만 내면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전시였지만 뒤샹의 <샘>은 운영위원간의 토론 끝에 결국 전시 참여 허락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뒤샹의 작품 <샘>이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예술을 시각적인 것에서 관념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한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기성제품도 작가의 선택에 따라 어떤 주제와 의식을 불어넣으면 독립된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뒤샹의 혁명적인 제안은 현대미술의 개념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왔다. 그래서 이제 예술가는 자신이 지닌 예술적인 기교나 솜씨를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관념적인 요소나 원래의 환경으로부터 분리된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 이후의 미술은 그 이전의 미술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다다이즘은 기존의 예술형식을 파괴하고 우연성과 자율적인 발상을 개입시킴으로써 향후 오브제, 꼴라쥬, 파피에콜레, 자동기술법 등의 자유로운 표현양식으로의 전환을 꾀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다이즘의 출현으로 예술과 삶의 경계가 사라졌고 일반 대중들에게 예술에 더 많은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공통적인 기원은 다다이즘의 부정정신에 의해 시작된 급진적인 혁명의 수준에 놓여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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