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차이
투명하게 반영되지 못한다는 깨달음
문수만
그토록 갈망하던 나의 트롱프뢰유는 애시당초에 없었던 신기루였음을 뒤늦게 깨달은 순간, 공제선은 사라지고 색이 온몸으로 들어왔다. 기호가 투명하게 반영되지 못한다는 깨달음은 과거에 대한 후회보다는 안개 속에서 어루만져지는 뮤즈를 찾았다는 안도감이 더 강하다. 모더니즘의 시작도 이런 심정으로 출발하지 않았을까? 모더니즘은 19세기 말부터 크게 유행한 예술운동이다. 중세교회의 권위에 반발하고, 이성의 합리성을 중요시한 근대화를 지향한 사조이다. 근대주의 또는 현대주의라고도 한다. 미술사에서 모던이라는 표현을 적용할 수 있는 시기는 20세기에 태동한 아방가르드 미술과 맞물린다. 모더니즘 이전의 미술은 종교의 제약을 많이 받았으며, 모방과 재현을 통해 대상의 사실적 묘사를 중요시 여겼다. 그런 타율에서 벗어나 작가의 주관이 반영된 다양한 형태의 미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들, 즉 종교적 타율에서 벗어나 예술가들은 상상력을 발휘해 새롭게 작품을 창조해내기 시작했다. 모더니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모더니즘은 칸트에서 비롯된 자기비판적 경향의 심화이고 칸트는 비평 자체를 비판한 최초의 모더니스트이다”라고 말했다. 모더니즘 미술은 자기비판을 통해 예술이 제공하는 경험,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으며, 그것은 다른 어떤 종류의 활동에서도 얻어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린버그는 모더니즘을 정립하기위해 칸트의 철학을 내세웠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진), 실천이성비판(선), 판단이성비판(미)이라는 세권의 비판 저서를 썼다. 데카르트 이후의 서양 철학은 형이상학이 과학과 결탁하면서 철학을 수학과 동일시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과학적인 접근 방식은 인간의 감성을 통해서 바라본 세계의 법칙을 찾는 것이다. 이것을 자연법칙이라 한다. 즉 자연을 시각으로 관찰하고 인식하는 능력을 순수이성이라고 칸트는 규정했다. 그리고 종교나 자유 같은 초월적인 도덕의 세계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규정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순수이성으로 다룰 수 없는 영역을 실천이성으로 구분 지었다. 그리고 두영역을 연결할 수 있는 가교자로 판단력이라고 정의했다.
플라톤에서의 진선미는 종속적 등급으로 나누었지만, 칸트는 진선미를 독립적으로 분리시켰다. 각각의 영역을 스스로 규정할 수 있는 규범을 자기비판이라고 한다. 그렇게 해야 예술에 있어서도 예술에 대한 평가를 어떤 도덕이나 과학에 따른 평가가 아니라 순수한 예술, 그 자체에 대한 평가로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린버그는 그 독립적 구분이 자율성이고, 자율성 이야말로 모더니티(현대성)가 된다고 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칸트가 모더니티의 시초라고 보는 것이다. 진선미를 각각의 영역으로 나누어 놓은 것, 즉 이것을 모더니즘의 출발로 보았다. 또한 미술의 자율성은 매체의 결정에 있기에 매체의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 미술의 자기비판이라고 했다. 회화에서 있어서 고유한 특징은 평면이라고 했고,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최초의 모더니즘 회화라고 했다. 마네 이전의 회화는 사실적 묘사를 위해 매체의 특성을 없앴다. 그러나 모더니즘 회화는 매체 자체를 드러내어 회화의 평면성을 강조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반대하는 반 모더니즘을 말한다. 현대사회는 산업화와 정보화라는 새로운 물결을 맞이해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가치관이 대두되었다. 이로 인해 미술분야에서도 다양한 가치체계를 추구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했다. 근대의 이성은 규칙, 권위, 규율, 통제 등의 국가주의를 의미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것들을 해체하려는 대중적 감성의 경향이다. 동양사상에서 살펴보자면 '나'가 중심이 되는 노자사상에서 엿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노자사상은 세속적인 지혜와 이성에 대해 서로 비슷하게 비판하고 있다. 노자의 무위는 인위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이성비판과 맥을 같이한다.
20세기초에는 합리성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모더니즘 사상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겪으면서 합리성이 옳은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동안 맹신했던 합리적 이성에는 한계가 있음이 밝혀졌고, 이에 합리적 이성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양한 양식과 주제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가져왔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은 예술분야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다루어지면서 문화의 새로운 페러다임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모더니즘이 단일성, 형식성, 절대성에 근거하고 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원성, 비형식성, 상대성을 중요시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의 분리가 아니라 연장선상에 있기에 모더니즘 이후의 문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시에 전통적인 가치와 권위주의에 대한 해체와 종말을 의미하는 사조이다. 그래서 엄격했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여러 장르들이 서로 혼합되거나 결합된 미술로 나타난 것이다. 그렇지만 진정한 진리와 미적가치에 대한 확실한 방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은 전대미문의 복합성과 다양성으로 예술의 범주는 폭이 넓어졌으며, 사회적 비판의식이 풍부해지는 역사성에 큰 의의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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