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만 - 집적된 쌀알

사카우에 요시타로(坂上義太郎)

요즘 나의 그림을 보는 관점에서 볼 때, 개인의 세계관에서 탄생한 그림을 다시 바라보는 작업은 ‘사람이 사람’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탕진하려는 소비사회에 대한 조용한 도전이 아닐까 싶다. 이제 양과 속도를 자랑하는 정보가 인기를 끄는 시대는 의문시되고, 앞으로 요구되는 것은 질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문수만(文水萬) 작가가 작년부터 올해에 걸쳐 제작한 ＜Cloud＞ 시리즈의 개인전을 고베(神戸)의 갤러리 키타노자카(GALLERY 北野坂)에서 보았다.

＜Cloud−841＞(2022년)과 ＜Cloud−843＞(2022년)은 보는 방향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또는 아래서 위로 펼쳐지는 그러데이션이 시간의 추이를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신작 ＜Cloud−898＞도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쌀알 형상에 의한 집적의 표현이다. 무수한 쌀알을 이용한 점의 집적 표현인 3연작의 작품은 가로로 긴 화면에 원을 만들어 언뜻 보기에 물의 파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수만 작가의 무한에 가까운 이미지를 들여다보는 듯한 원의 구도를 통해 작가의 확실한 세계관이 창출되고 있다.

쌀알 모양의 점은 하나하나 그 형태가 모두 다르게 표현된 것도 놀랍다. <Cloud> 시리즈의 쌀알은 문 작가의 어린 시절에, 가족의 양식(쌀)을 구하기 위해 어머니와 둘이서 소중한 재봉틀을 메고 전당포에 맡겨야만 했던 잊을 수 없는 기억의 상징이기도 하다.

현재 문수만 작가의 아틀리에는 북한과 한국의 국경 근처에 있다. ＜Cloud−841＞(2022년)인 빨간색은 석양에서 밤의 장막이 내리는 변화가, ＜Cloud−843＞(2022년)인 녹색은 아틀리에 근처에 자란 녹색의 나무라는 자연이 그 배경이라고 한다.

우리는 문득 저물어가는 저녁의 거리 풍경에 넋을 잃을 때가 있다. 때때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과 멀리 늘어선 빌딩들이 저물어가는 저녁놀에 물드는 광경에. 석양이 주위 사물을 붉게 칠하고, 현실의 광경이 '새로운 질감'을 동반한 이(異) 공간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문 작가는 자신이 나고 자란 토지와 만나온 사람들, 흥미를 느끼는 일, 매일의 시각적인 사상(事象)을 ‘새로운 질감’의 작품으로 바꿔 놓고 있다.

그림에는 작가의 시점이 드러난다. 문 작가의 그림은 실제로 보았거나 느꼈거나 하는 경험의 대체물이 아니라, 대상에 다가가면서도 별개의 감각 세계를 화면에 도포하고 있다.

구도와 점의 위치에 따라 시선의 움직임을 캔버스에 조직화하고, 그림이라는 매체에 고유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문 작가가 쌀알을 2차원과 3차원으로 오가는 물(物)로 다루는 이유는 작품을 보는 우리의 시선을 뒤집거나 깊숙이 끌어들임으로써 추상적인 공간과 접촉하는 감각 세계를 빚어내는 데 있다.

여하튼 문 작가의 그림에는 인간의 영위와 그것을 수용하는 커다란 자연이 융합되어 있다. 우리는 무수히 집적된 쌀알의 점 제작 과정의 경과를 이미지하고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무수한 점에는 작가의 사고가 담겨 있음을 말이다.

또한, 그림은 그것이 놓이는 공간에 따라 항상 변화한다. 한국의 아틀리에에서 보였던 공간은 고베의 갤러리 키타노자카라는 공간으로 바뀌면 당연히 보이는 방식이나 작품의 인상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공간만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감정 변화와 상태 등에 따라서도 변화를 계속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교류를 이어오고 있는 문수만 작가. 양국의 역사와 풍토를 비교하고 공통점을 도출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는 그의 자세에 다시 한번 깊은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