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7/03/16 (목) 01:22
분 류 개인전평론
ㆍ조회: 2051  
13회 모리스갤러리 개인전 평론

20174월 문수만 개인전 서문

 

표면에서 날아간 나비

 

허나영(미술비평)

 

청무우밭인가 해서 나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 김기림, <바다와 나비>

 

나비는 문수만의 분신이자 작가 자신이다. 개인적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 선택된 은유적인 자아의 대체물로서 처음 그의 화면에 등장했다. 뿌리 박힌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꽃과 다르게 연약해도 날아갈 수 있는 날개가 있는 나비처럼, 작가는 자유롭게 날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엔 날 수가 없었다. 박물관에서 본 박제된 나비처럼 핀까지 세밀하게 그려져, 화면에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작가는 이 핀을 뽑는다. 그리고 날개가 펼쳐져 있는 모습 뿐 아니라 날고 있는 모습의 나비도 화면에 담는다. 조금이라도 나비가 날 수 있기를 바라며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나비는 그림의 표면에 갇혀 있었다. 그나마 둥글게 굴러갈 수 있는, 어떠한 장애 없이 구를 수 있는 원형의 틀이었지만, 나비는 그 틀에 갇혀 있었다. 약해진 몸으로 멀리 떠날 수 없는 작가 자신처럼 말이다.

 

도자기 표면에 앉은 나비

문수만은 나비가 내 몸이라면 배경으로 쓰이는 공간은 나의 정신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몸, 즉 그림의 주체인 나비는 세밀한 묘사를 통해 생명을 얻었다. 날개의 세밀한 맥과 그 사이를 채운 화려한 색감 그리고 반짝이며 윤기 도는 털과 유연하게 움직일 듯한 더듬이의 마디까지, 문수만의 나비는 나비의 실재 모습 그 자체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비현실적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이러한 나비를 볼 수 있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하겠는가. 그래서 나비의 날개가 더 매혹적이며 찬란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비는 화면에 갇혀 있다.

만약 나비가 여전히 회화의 표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나비가 있는 공간을 바꿔주면 될 것이다. 윤회의 굴레가 바퀴처럼 돌아가듯, 원형의 표면은 한지가 되었다가 대리석이 되었다가 청자가 되었다. 청자의 표면이 되자 그 정신의 세계는 더 구체화되었다. 그저 평면이 아니라 청자 그자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문수만은 실제로 청자의 3D 이미지를 평면으로 펼쳤다. 이를 위해 청자 이미지를 디지털화하고 문양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평면화했다. 그래서 원형의 중심은 도자기의 주둥이가 되고 원형의 테두리는 도자기의 굽이 되었다. 펼쳐진 청자에는 상감무늬가 새겨졌다. 실제 상감기법과는 반대의 방식으로 그려진 문양들은 우리의 눈으로는 구분이 힘들만큼 청자 본연의 구름, , 당초 문양을 하고 있다. 심지어 상감도자 특유의 어른거리는 형태의 윤곽까지 유사하다. 그래서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말한 시뮬라크르(Simulacre)처럼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청자표면을 재현했다. 그 속에서 나비는 편안해 보인다. 다양한 종류의 나비들은 형형색색의 무늬를 뽐내며 청자와 자연스레 어울린다.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말이다.

문수만은 청자의 시뮬라크르를 만들기 위해 남다른 방식을 사용하였다. 비전공자로서 가질 수 있는 재료에 대한 색다른 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도자처럼 혹은 한지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을 스스로 습득했다. 분명 아크릴, 유채 등 분명 여느 회화에서 쓰이는 재료인데, 문지르고 덧붙이는 장인과 같은 손길에, 마치 연금술사의 것과 같은 효과를 첨하여, 새로운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는 도자기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각적 효과이다.

 

프렉탈 세계로의 확장

도자와 같이 보이는 시각적 효과는 배경공간을 따라 흐르다, 화면의 테두리에 이르게 된다. 물질의 일부분을 관찰하고 온갖 과학적 도구들로 들여다보면 그 미세한 조직이 생경하게 다가오는데, 문수만에게 도자기의 굽이 그러했다. 몽글몽글한 그 미완의 의도치 않은 그 덩어리가 오히려 도자기 전체의 가치를 넘어서는 듯 보였다. 마치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조선 막사발에 반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화면의 둥근 가장자리를 차지하던 굽의 몽글몽글한 면이 중앙으로 몰려들어왔다. 겉이 안이 되고 안이 겉이 되는 시공간이 뒤집어 지는 경험과도 같다. 그리고 그 요철을 표현하다보니 마치 금속과 같은 시각적 효과가 나타났고, 산맥과도 같은 형태가 만들어졌다.

작가는 도자기 굽의 요철을 맥()으로 보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프렉탈(fractal)로 이름 붙인다. 사실 둘은 다른 의미가 아니다. 카오스같이 무질서 해 보이는 자연도 실상은 작은 단위가 순환적으로 반복한다는 프렉탈 원리로 설명이 된다. 나뭇잎의 잎맥이 형성된 방식처럼 나무의 기둥에서 가지가 뻗어나가고, 해안선의 작은 굴곡들이 반복되는 방식은 지구 밖 위성에서 본 해안선의 굴곡도 만들어낸다. 부분과 전체는 유사한 프렉탈 원리를 이루고 있고, 이는 순환하며 반복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로 인해 자연의 모든 것들은 서로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 생태계가 그러하지 않은가. 외래종이 들어오면 일대의 동물의 수가 급격히 줄거나 혹은 토종식물들이 사라지거나 하는 현상이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그물망은 자연 뿐 아니라 인간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리학자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는 프렉탈 이론을 인간의 사회에도 적용한다. 부모와 자녀라는 기본 단위의 관계는 점차 이웃, 마을, 도시, 국가 등의 관계로 순환하며 반복하게 된다. 각 인간 개인은 그물망의 한 점과 같고 모든 인간들은 멀던 가깝던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문수만의 프렉탈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감을 뭉쳐 붙인 각 덩어리들은 처음에는 우연인 듯 보이지만 작가의 직관에 따라 배열된다. 그리고 그 덩어리들은 점차 맥으로 연결된다. 마치 산처럼, 그리고 인간의 핏줄처럼 말이다. 또한 이는 인간 사회 속 관계의 그물망의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다. 동시에 도자기 굽에서 우연히 형성된 요철의 확대물이기도 하다. 미시적으로 굽의 한 부분이기도 하면서도 거시적 관점에서는 인간들의 맥이기도 한 것이다. 부분과 전체가 동일한 프렉탈의 원리를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성을 가진 프렉탈의 표면에 문수만은 역사의 시간성도 얹었다. 고구려 고분벽화 속 주작과 현무가 중앙을 차지하고, 드레스덴의 벽화와 정조의 화성행차가 표면을 지나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비는 표면을 떠나게 되고, 화면 밖에서 시공간의 씨실과 날실을 목격한다.

 

몰입으로 자유를 얻은 나비

김기림의 시 <바다와 나비>에서 흰나비는 바다의 수심이 얼마인지 모르고 청무우밭으로 착각하여 내려갔다가 날개가 젖어버린다. 문수만은 무모하게 바다에 뛰어든 나비처럼, 날개가 바닷물에 젖어버린 나비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비가 앉은 표면, 다시 말해 작가가 자신의 정신인 배경 공간에 대한 몰입은 세상에로 확장되었고 프렉탈의 공간을 이루었다.

문수만은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덧 모든 것을 감각할 수 없게 되고 오로지 붓끝만이 보이는 몰입의 경지에 이른다 한다. 이는 어쩌면 극사실적인 세밀한 붓질과 반복되는 손질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작가 자신의 정신인 공간의 확장에 의한 몰입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몰입의 과정으로 결국 나비를 표면에서 날려 보낸다. 마치 자신을 잊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나비는 자유를 얻었고 화면 밖에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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