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2/07/31 (일) 09:35
분 류 개인전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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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떼아트갤러리 문수만초대전

문명을 일궈온 곡식 알갱이 그림에 박히다

이선영(미술평론가)

중심 집중적 구조의 작품을 많이 발표해 왔던 문수만은 최근 몇 년간의 작업에서 쌀이라는 소재를 형태소로 활용한다. 정신적인 면이 강했던 그동안의 작업들과 쌀이라는 세속적인 소재는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하지만 무한을 연상시키는 형태의 도열이나 모노크롬 분위기의 정제된 화면에서 정신성은 이어진다. 동심원 또는 수평적으로 나열된 쌀 형태의 원소는 멀리서 보면 점으로 보이고, 더 멀리서는 배경 색에 묻혀 단색화 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형식이든 형태소는 유지하고 있어서 배경 색과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시각적 효과가 있다. 수년 전 대전 인근 작업실에서 복잡한 문양이 주를 이루는 작품 중, 아무것도 없이 자연스러운 크랙만 가 있는 빈 화면들을 가리키며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작품이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작업 공정상 여러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는 문수만의 작품에서 빈 화면은 앞으로 무엇이라도 담을 수 있는 잠재성으로 충만했던 것이다. 
무(無), 공(空). 허(虛) 같이 정형화되기 힘든 관념 또한 담기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 많이 보이는 푸른색 작품들은 하늘이나 바다를 연상시키는데, 그것은 작가가 여전히 담기 힘든 것을 담으려 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한편 그것은 스스로 유폐된 작업이라는 감옥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염원일 수도 있다. 그림을 통한 상상 여행인 셈이다. 이번 전시에서 하늘을 연상시키는 작품은 집이 있는 헤이리의 하늘에서 영감을 받았다. 동이 터오는 하늘을 부드럽게 연결되는 몇가지 색의 띠로 표현했다. 하늘이나 바다같은 무한을 유한의 화면 속에 담는 방식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같이 불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이란 가능한 것을 단지 예쁘게 꾸미는 문제가 아니라 가능과 불가능 사이의 접점에서의 고단한, 또는 흥미진진한 게임이다. 하늘이나 바다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화면을 완전히 비우지는 못하고 최소한의 형태소로 채워 넣었다. 
균질적으로 꽉 차 있는 것은 비어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대되는 것의 종합에 있어 둥근 구도는 끝과 끝이 이어져서 수월하다. 수평적 구도의 경우 화면 바깥으로도 연장되는 느낌을 살리면서 무한과의 관계를 설정한다. 그의 작품은 시작과 끝의 중간 토막을 포착한다. 이 중간은 무한의 한 토막으로서의 유한이며, 작품의 변주는 무한하다. 배경으로부터 형태를 구별할 수 있는 최소 두가지부터 최대 다섯가지를 넘지 않은 색의 조합으로 나타난다. 지평선 부근 푸른 새벽녘 저편에서 먼동이 터오는 듯한 색이 배열된다. 수평선의 경우 구별하기 힘든 하늘과 바다 사이의 경계에 다른 색상 대가 배열된다. 형태소는 풍경으로 스며든다. 형태소나 구성 방식이 단순한 대신, 색으로 다양함을 구가한다. 중심 집중적, 그리고 요즘에 주를 이루는 수평적 구도는 생활에서의 산란함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문수만은 이번 전시에서 그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원형 구도의 작품을 두 점만 출품했다. 
영묘한 색으로 빛나는 보석같이 작은 작품과 관객의 시야를 교란하는 대형 작품이 그것이다. 전시장 입구에 배치된 작품 [Cloud-202]는 여러 색들이 모여 발광체를 이룬다. CD의 표면을 떠올리는 미묘한 반사체는 정보를 내장한다. 이 전시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입자의 방향과 크기가 거의 일정해서 중심 집중적 구도를 강조한다. 다양함이 하나로 집중되는 모습으로 화려함과 명상적 분위기를 동시에 살린다. 작품 [Cloud-035]는 캔버스 4개가 만나는 지점이 선명한 십자형을 이룬다. 그 안을 채우는 입자는 쌀 이미지인데, 한자어 ‘米’자와도 유사하다. 상대적으로 밝은 중심 부분에서 발하는 빛이 신비롭지만, 원근감이 교란돼서 현기증이 나기도 한다. 대부분의 작품군은 블루 계통이다. 블루에도 많은 계열이 있는데다가, 보라 등 블루 근처의 색도 적지 않다. 어떤 색이 공존하든 작가는 부드러운 연결을 지향한다. 그것이 풍경이라면 당연히 하늘이나 바다, 또는 그 모두이며, 화면 안의 색 띠는 일출같은 중요한 사건을 알리는 증후이자, 그 사건의 축이 되어주는 수평선이나 지평선 역할을 한다. 
전체 화면과 구별되는 색 띠는 명확한 경계를 가지지 않으며 입자로 이루어진 화면이 그 역할을 한다. 화면을 동심원으로 또는 수평으로 빼곡이 채우는 입자는 색이며 빛이고, 양자 간의 전이이며, 지상의 중요한 현실을 상징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하단 부분에 다른 색 띠가 있는 블루 화면의 작품 [Cloud-685]는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아련한 지대가 있다. 지평선 부근에서 발광체가 올라오는 기미가 있는 작품 [Cloud-679]는 고요한 푸른 새벽녘에 일어나는 사건을 암시한다. 쌀만큼이나 매일 일어나는 중요한 우주적 현상이다. 그 외에 하늘색이나 아쿠아 블루, 보라 등으로 서서히 변하거나 한 색으로 완전히 포화 된 작품군이 있다. ‘Cloud’라는 제목은 하늘을 배경으로 떠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것을 암시함과 동시에, 현대 디지털 문화에서 공유되고 있는 정보의 저장고 또한 상징한다. 저장고를 채우는 것은 쌀 알갱이 모양의 입자인데, 여기에서 작가는 물질과 문화의 관계를 다룬다. 
개인의 인생 주기부터 농사가 시작되어 변화된 인류의 역사를, 그리고 만다라적인 구도를 가진 작품들은 보다 근본적인 관념을 포괄한다. 그 밖에 오렌지, 연두, 노랑 같은 따스한 계열의 화면이 푸른 계열의 색조와 대조를 이룬다. 보는 거리에 따라서 형태 입자들은 바탕에 묻혀 단색화풍의 화면이 되기도 한다. 노랑, 보라. 아쿠아 블루로의 점진적 변화가 있고. 그 안의 입자들이 배경 색에 따라 각기 다르다. 작품 [Cloud-781]의 경우 요즘 작품에 가미된 장식성이 극대화된다. 장식은 (순수)미술보다 더 오래된 관례이며, 관념보다는 기술과 밀접하다. 그의 작업실에는 작업 공정의 일부를 차지하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트 커팅기 등 전형적인 그림 재료 이외의 기구들이 많다. 원래 공학도와 사업가로 늦게 미술을 시작했지만, 누구보다도 국내외의 전시회에 많이 참여한 문수만이 굳이 추상을 비롯한 순수미술의 관례에만 충실할 이유는 없다. 
추상적 화면과 결합 된 쌀이라는 독특한 소재는 예술작품의 목적 중의 하나인 마음의 평화를 찾는 과정에서 관념만큼이나 물질의 역할을 전제한다. 점이 기하학적이고 관념적 요소라면, 쌀은 유기적이고 물질적인 요소다. 세상만사를 다 먹는 문제로 돌리는 것은 큰 오류이지만, 모든 것을 마음의 문제로만 돌리는 그 반대의 경향도 오류다. 특히 가난을 한번이라도 겪어 봤던 사람은 물질의 중요성을 안다. 밥의 문제는 오히려 너무나 당연한 진리이기에 숨겨져 있는 억압된 것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위기 국면에서 억압된 것은 회귀한다. 현대사회의 역동성에는 위기가 늘 잠재해 있다. 쌀 또한 정신이고 문화이고 예술일 수 있다. 고상함을 추구하는 예술은 세상을 지배하는 물질주의에 대항하면서 유심론의 오류에 빠지곤 한다. 문화예술의 활성화와 기본 영양의 문제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 이른다. 특별한 중심이 없이 일정 간격으로 배열된 쌀알은 집중이 아닌 평등을 말한다. 
밥의 평등은 인류가 생각할 수 있는 이상 중 가장 지고한 이상이라고 생각된다. 문수만의 소품 중 하나는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인종들이 한 이불을 덮는 모습을 은유한 작품이 있는데, 세계화로 더 좁아진 지구촌에서 갈등이 더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메시지다. 좁아진 지구에서 평화는 특히 먹는 문제의 평등을 전제한다. 특별한 강조점 없이 배열된 곡식 알갱이들은 그것들이 단순히 기하학적 점이라면 불가능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모를 심듯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형태소는 땅에서 직접 노동을 해서 수확한 이들의 정당한 몫을 말한다. 작가의 작업 또한 대지와 접하고 있는 농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화가의 작업은 농부의 생산물만큼이나 고난과 위대한 성취를 공유한다. 일정 간격으로 배열된 쌀은 그것을 통해 수많은 대를 이어왔던 유전자의 면모를 떠올리고, 그 자체가 하나하나의 사람인 듯이 보인다. 어떤 사람은 누워있고, 어떤 사람은 서 있고, 어떤 사람은 행동을 취하려는 듯 기울어져 있기도 하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형태소는 문자같은 느낌도 있다. 쌀은 문명, 즉 구술성을 넘어서 문자성에 기반한 문명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도 강조될 수 있다. 쌀은 그저 여러 소재 중의 하나가 아니다. 화폐라는 코드가 지배하기 전에 쌀은 가치의 기준이었다. 부친이 사업을 해서 굴곡이 많았던 작가에게도 쌀은 그저 중성적인 소재는 아니다. 그것은 전업 작가로 변신해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문수만의 작업에서 쌀은 삶의 기본이 되는 영양이라는 내용을 포함하지만, 형식적으로는 차이의 계열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다. 쌀알의 실루엣은 물론 쌀눈의 위치나 각도 조절을 통해 한 작품에 배열된 쌀알 수는 그 숫자만큼의 사람들과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차이를 가진다. 일률적으로 찍힌 점만으로는 불가능한 차이다. 점도 실제로 찍다 보면 차이가 나겠지만, 결국은 숙련된 손에 의해 균질화될 것이다. 문수만이 반복 속에 차이를 주는 방식은 시트 커팅지와 컴퓨터의 활용이다. 
이전 작업에서 문화재의 도상 등을 소재로 작업할 때 사용한 시트 커팅기 기계를 쌀 문양에도 적용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판화 같은 분위기도 있다. 압도적인 스케일 만이 그것이 판화일 수 없음을 알려줄 것이다. 그것은 그의 이전 작업에서 도자기와 거의 구별할 수 없었던 작품이 스케일을 통해서 그림임을 증명했던 것과 같은 차원이다. 붓으로 직접 찍지 않는데도 다양함이 가능한 이유는 복잡한 제작 공정 때문이다. 캔버스 천 자체가 울퉁불퉁해서 필름을 안착시켜도 불규칙적이며 형태 주변으로 뻗쳐나온 잔 선들을 일일이 다 손을 봐야 하기에 결국은 그리는 셈이다. 붓작업으로만 하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기계적 공정이 한 두 번이라도 들어가는 이유는 계산이 개입된 다양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계의 개입은 마치 난수표와도 같은 방식으로 차이를 준다. 육안으로는 그 차이를 다 가늠할 수는 없다. 작가에 의하면 작품 속 쌀 형태는 만 종류 이상이다. 
쌀은 크게 5가지 형태인데 쌀눈의 위치가 다 틀리다. 회전에 따라서도 다른 형태가 나오며, 순열을 달리 선택하면 원리상 같은 작품은 불가능하다. 시트지 작업 후 다시 물감으로 후 작업을 하면 또 달라진다. 시트지 작업이 중간에 끼어 있어 밑 작업이 완벽해야 한다. 부착력이 좋은 젯소와 바인더, 바탕을 칠하는 물감, 마지막에 바니쉬를 바르는 것까지 15층 이상의 작업이 농축되어 있다. 정신과 육체 에너지를 모두 쏟아 넣은 산물일수록 편안하게 볼 수 있음은 생산과 소비와의 차이를 말한다. 쌀이라는 소재나 동심원 또는 수평의 구조는 단순한 대신에 완벽한 마감을 지향한다. 500호까지도 가는 화면에서 쌀알 크기의 형태소는 매우 작지만 하나하나의 외곽선은 살아있다. 죽처럼 흐지부지 퍼지지 않는다. 배경 색이 형태 안으로 들어가 있는 작품조차도 배경 색의 입자는 그대로 보인다. 색의 혼합은 관객의 눈에서 일어난다. 인상파의 전략을 떠오르는 방식으로 시각의 신선함을 추구한다. 
작품에 따라서 옵티컬 아트 같은 어른어른한 환영이 있다. 점점이 뿌려진 배경의 작품도 보이지만 배경은 거의 평면적이어서 모노크롬 회화의 분위기가 있다. 한국의 모노크롬 회화는 단색화라는 단어를 그대로 영문으로 표기할 정도로 국제적으로 인정 받았다. 문수만의 작업 여정에서 만난 단색화의 독특함은 쌀이라는 형태소에 있다고 보여진다. 야경, 특히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야경에서 쌀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공조명이 겹쳐진다. 그의 단색화는 화려하고 세련된 도시 문명부터 한반도에서 쌀농사를 지었을 당시까지 소급되는 시간대를 포함한다. 쌀 이미지의 작업은 2018년의 개인전 때 고구려의 청동기 문화 유물을 소재로 작업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가는 기하학적 청동거울 등 화려하고 정교한 고구려 유물 중에서 농사를 지은 흔적인 볍씨에 주목했다. 특히 작가는 쌀을 의미하는 상형문자 ‘米’를 염두에 둔다. 중심이 있는 사통팔달의 구조는 그의 이전 작업과 연속적이다. 
중요한 자원인 식량은 농사가 가능한 물줄기를 비롯해서 유통의 중심에 놓인다. 수렵과 채취에 기초한 불확실한 시대에서 보다 예측가능한 문명의 시대로 도약하게 했다.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가 ‘신석기 혁명(The Neolithic Revolution)’으로 이름 붙인 농경의 시작은 말 그대로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았다. 농사에 의거한 생산력의 증대는 인구증대를 가져와 인간 사회의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문수만의 작품에서 농경문화의 흔적은 토기와도 관련된다. 오래된 도자기에 대한 그의 선호는 커서, 그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실제 도자기인지 확인해 보느라 만져보는 것이 걱정거리였을 때가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농경이 시작되면서 곡물을 보관하는 그릇도 발명하게 되었다고 본다. 오래된 그릇에는 곡물인지, 곡물을 생산하기 위한 추상적 감각인지 모를 점들이 찍혀있곤 했다. 자크 브로스는 최초 인간의 주된 양식은 동물이 아니라 식물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나무의 신화]에서 민간 신앙을 예로 들어 ‘나무 열매와 성림의 도토리가 부족해지기 시작하면서’(베르길리우스) 농업이 탄생하였다고 말한다. 떡갈나무 숲이 풍부한 황금시대의 종말과 더불어 시작된 쇠퇴는 노동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에덴 동산의 신화가 있듯이, 씨를 뿌리지 않아도 열매가 자라는 그런 곳이 바로 유토피아였다. 자크 브로스의 [식물의 역사와 신화]에 의하면 속씨식물의 시대가 포유류의 시대와 일치하는 것은 바로 포유류가 열매, 특기 곡물에 의존해서 살기 때문이다. 곡물의 재배는 인구의 폭발적 증가를 낳았고 문명의 근간을 이루었다. 자크 브로스는 곡식의 재배로 말미암아 여러 해에 걸쳐서 씨앗을 비축해둘 수 있게 되자 인간은 안정감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창고 속에 쌓아둔 씨앗은 가장 오래된 형태의 자본축적으로 간주되었다. 빵 문화권에서는 밀이, 쌀 문화권에서는 쌀이 가치의 기준이 되었다. 
하인리히 야콥은 [빵의 역사]에서 빵이 최초로 구워진 고대 이집트의 문화를 조사하면서, 방방곡곡에 있는 오븐은 실질적인 화폐 주조 공장이었다고 말한다. 수백 년 동안 임금은 빵으로 지급되는 등의 화폐 역할을 했다. 가장 사악한 행동은 약속한 날에 빵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어떠한 곡류도 자연 그대로 얻어진 것이 없다는 점에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상대적인 자율성을 얻게 된다. 농사는 당면한 현재를 넘어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 했다. 서구의 이론가들은 주로 그들의 주식인 빵, 즉 밀과 관련된 연구를 많이 했지만, 그들이 빵에 대해 가지는 욕망이나 안식은 한국 사람이 밥에 대해 가지는 그것과 마찬가지다. 채취나 사냥에 비해 농사는 인간의 사회성과 협동을 더욱 요구한다. 쌀로 대변되는 농사는 인간의 사회적 측면을 말한다. 이 사회적 측면은 예술 활동과도 매우 밀접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오랜 유아기를 거치며 성인이 되어서도 그러한 특징을 가지는 이유와 연결된다. 
클라이브 브롬홀은 [영원한 어린아이, 인간]에서 왜 인류가 지금과 같은 형태로 진화했는지를 설명해주는 통일된 이론이 하나도 없음을 지적하면서 잃어버린 고리를 찾으려 한다. 그는 다른 영장류들과 다른 인간들의 난해한 특징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단 하나의 요소를 찾아냈는데 그것은 유아적 특징이다. 브롬홀은 우리 조상들이 무엇 때문에 영원한 유아 상태로 퇴행한 것일까를 묻는다. 우리 조상들이 영원한 아기로 변화한 것은 몸의 구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600 만 년 전 생존을 위해 훨씬 더 중요했던 어떤 것 때문이다. 그것은 집단화, 즉 사랑과 사회적 협동이 필요성 때문이라는 것이 브롬홀의 주장이다. 대표적인 노동 집약형의 사업인 농사는 인간의 사회화에 큰 역할을 했다. 이제는 생산만큼이나 유통이 중요해서 실재의 위상은 모호해진다. 하지만 만물의 코드화가 진행되어 실재가 아닌 코드, 특히 그 정점에 있는 자본이 계략이 판을 치는 현재에도 국제 곡물가는 가치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매월 발표하는 세계 식량가격지수(FPI)는 곡물을 기준으로 하며, 세계 경제의 동향에 중요한 지표가 된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가 불길한 영향권에 들어왔다. 가난한 나라에 더 큰 타격을 주는 이 재난은 곡물이 흔들릴 수 없는 실재의 기준임을 새삼스럽게 알려준다. 달러를 기축 통화로 하는 질서에 편입되어 있으며, 자원이 없는 무역 중심의 한국은 곡물 생산에 대한 경쟁력이 없어서 식량 무기화에 취약하다. 건강을 위해 탄수화물을 거부한다면서 무시되기도 한다. 예술작품을 통해서나마 쌀이 호출되는 것은 쌀이 가진 중요성이 평가절하되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물감과 육체, 도구를 쓰는 매일의 고된 작업 과정들이 단지 코드로 환원될 수는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나 국제 경제학적으로 쌀은 실재의 위상을 가지며, 그것은 실재를 다루는 예술과 친숙하다. 그렇다고 현대미술가가 쌀이나 벼, 밥 등을 재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현주의는 현대미술이 극복해야 할 관념주의의 유산에 속한다. 문수만은 실재를 추상화한다. 그의 작품 목록에서 어느 날 갑자기 쌀 이미지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쌀 이미지가 작품의 추상성을 강화한 것은 사실이다. 그의 이전 작업에서 토기나 자기 등은 주요한 작품 소재가 되어주곤 했다. 그것은 원형 구도의 모델이 되어준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작품은 100호 작품 4개가 연결된 500호 작품으로 원형 구도의 작품이다. 입구 초입에 걸린 가장 작은 작품도 원형 구도다. 그 사이에 다양한 크기와 바탕색의 사각형 작품들이 채운다. 동심원 구조를 사각형으로 펼치면 수평선의 나열이 된다. 원이나 사각형이다 동질 이상의 관계에 있다. 문자열처럼 보이는 쌀 입자는 또한 정보를 함축한다. 이번 전시작품들의 제목인 [크라우드 no]에 포함된 저장소는 디스크에 사건들의 정보를 모아 놓은 것을 의미한다. 모아 놓은 잉여분의 쌀이 문명을 일궈냈듯이 정보는 쌀처럼 에너지의 비축이다. 
농사가 시작된 신석기 시대가 혁명이라면 정보의 시대도 혁명이다. 현대사회에서 정보는 경쟁력이며 기술이며 자본이다. 사각형 형태의 작품에 수평적으로 배치된 입자들은 미지의 문자열과 겹쳐지며, 실재와 정보의 호환성을 말한다. 사각형 구도의 작품들도 같은 제목으로 컴퓨터 바탕 화면의 폴더처럼 수평으로 나열된 것 같은 느낌이다. 폴더를 연다면 쌀알의 배열과 비슷한 빼곡한 문자열이 어떤 정보를 탑재하고 있을 것이다. 가령 쌀을 통해 대를 이어온 사회는 미래의 식량 전쟁을 대비한 쌀 유전자 관련 정보가 중요할 수 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인종만의 유전자도 마찬가지다. 수평 구도에 내재 된 자연적 이미지에 정보라는 차원을 더한 작품들은 다양한 은유로 뻗어나가는 최소한의(minimal) 예술이다. 예술은 물질과 정신의 가교 역할을 한다. 문수만이 선택한 쌀이라는 형태소는 물질을 대변하기에 충분한 상징성을 지닌다. 그것이 어떤 정서적, 정신적 울림을 낳는지는 관객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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